사자성어 155

여리박빙(如履薄氷)의 뜻과 재미있는 이야기

여리박빙(如履薄氷)은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매우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상황”을 뜻하는 한자 성어입니다. 즉, 얇은 얼음을 밟고 가는 것처럼 조심해야 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얼음이 깨질 수 있듯이, 여리박빙은 극도로 신중해야 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다음 이야기를 통해 이 뜻을 더욱 깊이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한자급수 3II급如履薄氷같을 여밟을 리엷을 박얼음 빙옛날 어느 나라에 혜성(惠成)이라는 총명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나, 왕은 성격이 변덕스럽고 감정이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대신이 왕에게 재상 혜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혜성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왕에게 아첨하지 않는 점을 지적..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뜻과 유래

전화위복(轉禍爲福)은 ""불행이 오히려 행운으로 바뀐다""는 뜻으로, 위기나 고난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을 비유합니다. 어떤 시련도 잘 극복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의미로 자주 쓰입니다. 유래는 중국 전국시대 소진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일화에서 전화위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유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한자급수 3II급轉禍爲福구를 전재앙 화할 위복 복전국 시대, 중국 천하가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 진(秦)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소진(蘇秦)은 젊은 시절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세(遊說)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조나라(趙國)에서는 그를 비웃었고..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뜻과 재미있는 이야기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온다”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거나 말을 꾸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다른 의미로는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한다'라는 의미도 있는데 요즘은 오히려 이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아전인수의 의미를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한자급수 3II급我田引水나 아밭 전당길 인물 수옛날 어느 마을에 정의감으로 유명한 젊은 농부 정수가 있었는데, 그는 유명세를 얻고 싶어 농촌 일손을 도우며 착한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속으로 자기 이익만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에 가뭄이 들어 논밭에 물을 대는 일이 중요해졌고, 마을 어귀에 있는 수로(水路)..

심기일전(心機一轉)의 뜻과 재미있는 이야기

심기일전(心機一轉)은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새롭게 다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전환하여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어떤 일을 실패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낙담하지 않고 결심을 새로이 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재도전하는 태도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다음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심기일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한자급수 4급心機一轉마음 심베틀 기한 일구를 전옛날 한 시골 마을에 위청(衛靑)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검술을 익혀 세상에 나가 공을 세우고자 했지만, 평범한 재능 탓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위청을 비웃으며 그의 꿈을 헛된 일이라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위청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산에 올라 목검을 휘두르며 달리기로 체력을..

종두득두(種豆得豆)의 뜻과 유래

종두득두(種豆得豆)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뜻으로, 자신이 행한 대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원인에 따라 반드시 그에 맞는 결과가 생긴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이치를 상징합니다. 이 사자성어는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유래했습니다. 그의 시 내용을 통해 종두득두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한자급수 4II급種豆得豆씨 종콩 두얻을 득콩 두옛날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백성의 삶과 고통을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기며 정의롭고 청렴한 성품으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조정에서 벼슬을 하던 그는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일에 단호히 맞서며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권력에 아부하거..

엄처시하(嚴妻侍下)의 뜻과 유래

엄처시하(嚴妻侍下)는 엄한 아내의 지배 아래 순종하는 남편의 처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엄격한 아내에게 눌려 사는 남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고사성어는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등장하는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입니다. 제(齊)나라의 전략가 전횡(田橫)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한자급수 3II급嚴妻侍下엄할 엄아내 처모실 시아래 하전횡(田橫)은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마지막 왕실 후손으로 강직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강인한 리더십을 발휘했으나, 가정에서는 아내에게 순종하는 모습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전국책]에는 전횡이 나라의 정무를 처리할 때는 단호한 성격으로 명령을 내렸지만, 집안에서는 아내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녀의 의견..

화사첨족(畵蛇添足)의 뜻과 유래

화사첨족(畵蛇添足)은 뱀을 그리면서 쓸데없이 발을 더한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행동을 덧붙여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필요 없는 일을 덧붙여 오히려 일을 망치는 상황을 비유할 때 사용합니다. 화사첨족은 [전국책(戰國策)]에 기록된 초나라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고사입니다. 이 유래를 통해 화사첨족의 의미와 교훈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한자급수 3급畵蛇添足그림 화뱀 사더할 첨발 족어떤 초나라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제사를 마치고 남은 술을 가신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남은 술 한 병을 가신들에게 건넸습니다. 사람들은 술이 적어 여럿이 나눠 마시기엔 부족하고, 한 사람이 마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땅에 뱀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술을 마시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재빨리 ..

부화뇌동(附和雷同)의 뜻과 유래

부화뇌동(附和雷同)은 주관이나 소신 없이 남의 의견이나 행동을 무조건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즉, 천둥소리에 메아리가 울리듯 남의 말에 무조건 동조하고 따라가는 모습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부화뇌동의 유래는 [한서(漢書)]에 기록된 내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표현이 등장한 배경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한자급수 3II급附和雷同붙을 부화할 화우레 뇌(뢰)같을 동부화뇌동(附和雷同)은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자신의 소신 없이 남의 말과 행동을 무조건 따르는 태도를 경계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맹목적 동조가 나라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서]에서는 주로 정치적 상황에서 관리들이 권력자의 의견에 주관 없이 무조건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태도를 비판..

황구소아(黃口小兒)의 뜻과 유래

황구소아(黃口小兒)는 '노란 부리를 가진 어린 새끼 참새'를 비유한 말로, 어린아이 또는 철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황구(黃口)는 새끼 참새의 부리가 노란색인 것을 말하며, 소아(小兒)는 어린아이를 뜻합니다. 황구소아는 삼국 시대 위나라의 조식(曹植)과 관련된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입니다. 그 유래를 통해 황구소아의 의미와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한자급수 5II급黃口小兒누를 황입 구작을 소아이 아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조식(曹植)은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 문학과 철학에 정통한 인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신하들은 그를 존경하며 그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지자 조식은 신중히 상황을 지켜볼 뿐 쉽게 의견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

누란지위(累卵之危)의 뜻과 유래

누란지위(累卵之危)는 쌓아 올린 알처럼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 '계란을 여러 개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형세'를 비유한 말로,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쉽게 무너져 버릴 만큼 몹시 위태로운 상태를 나타냅니다. 누란지위(累卵之危)는 [사기(史記)]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입니다. 그 유래를 통해 이 표현이 위태롭고 불안정한 상황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한자급수 3II급累卵之危여러 루(누)알 란어조사 지위태할 위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전쟁과 내정의 혼란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국경에서는 각국이 틈만 나면 진나라를 공격했고, 나라 안에서도 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소양왕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지만 이를 타개할 마땅한 인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